<화려한 휴가> 제작보고회 Q&A

Q. 영화배경이 되는 518 민주화 운동이 우리 나라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시는지?
(김지훈 감독) 우리가 숨쉬는 자유, 민주 이런 것들이 한 순간에 이루어진게 아니라 어떤 과정을 거친 피 땀흘린 노력의 결과라 생각한다.이 영화는 나에게 있어 참회의 영화다.
(안성기) 그 당시 희생당한 사람들이 소시민이라는 점과 그 사람들에게서 518 민주 광주화 운동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화려한 휴가 주제와 맞는다고 생각한다.
(김상경) 90년대 초반 대학 생활 중 518 영상물을 보는게 유행이였다. 518은 근대 역사에서 가장 큰 시발점이고 그 이후 80~90년대까지 구심점이었던 것 같다.
여지껏 우리는 평범한 국민끼리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고 화해하고자 하는 노력은 없었던 것 같다. 이번 영화를 통해 온 국민이 화합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Q. 1980년대 광주에 계셨다던데 영화를 찍으면서 남다른 소감이 있지 않았나?
(박철민) 느닷없이 15일간의 방학을 안겨준 것이 광주와의 첫 번째 만남이다. 공수부대 시민군들의 총칼이 무섭기도 했지만 쉽게 먹어볼 수 없었던 음료수들을 시민군 트럭을 쫒아다니면서 마음껏 먹을 수 있었던 즐거웠던 방학기간이었다.
두번째는 대학교때 분노의 광주, 희생의 광주, 처절한 죽음의 광주를 비디오를 통해서 만났다. 커다란 희생이 어떤 이들에 의해 계획되었다는 것을 알고 분노했던 만남이다.
세번째 만남은 <화려한 휴가> 영화를 통해서다. 또 다른 광주는 슬픔의, 죽음의, 안타까움의 광주뿐만 아니라 눈부시고 찬란한 광주도 있었다는 것이다. 10일간의 해방 광주 속에는 눈물도 있고 슬픔도 있었지만 노래도 있었고 춤도 있었고 사랑도 있었다는 것을 영화를 통해 배웠다.

Q. 광주 이야기가 여러 번 이야기 되고 영화화 되었는데 이 이야기를 굳이 다시 해야되는 이유는?
(김지훈 감독) 518 관련 영화나 여러가지 영상물을 접하면서 518을 다룬 영화가 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먼저 518 영화를 찍었던 감독들이 부러웠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전작들은 사람 냄새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정치적 이데올로기 속에 핵심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그런 환경에 처했을 때 어떤 모습일까… 그 향기가 지금은 우리한테 어떻게 스며들고 있나가 영화의 모토이고 주제이다.
(사회자) 시나리오만 보고도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그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Q. 1980년대 시대를 재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김지훈 감독) 제일 먼저 투자사들에게 어필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산업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말이다.(웃음) 가장 크게 고려한 것은 세트이다. 세트 비용이 왠만한 영화 제작비와 맞먹는다. 그 다음은 소품에 신경을 썼다. 우연치 않게 중국에서 예전 어렸을 때 입던 옷을 보고 의상팀을 중국에 보냈다. 그 당시 차도 필요했다. 전세계 딜러들에게 메일을 보냈고 마침 이집트에서 필요한 차를 5대 획득, 1대는 비행기로 공수하고 4대는 배로 공수했는데 너무 안와서 촬영이 계속 늦어졌던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는다.

Q. 1980년대에 태어난 두사람은 80년대 광주에 살았던 캐릭터를 배역으로 맡아서 어떤 준비를 했나?
(이요원) 어린시절 봤던 영상물이 도움이 되었다.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518 기념관도 가보고 다큐멘터리도 보면서 많이 공감했다. 시나리오 자체가 그 시대 어떤 사람이라도 스며들수 있을 정도로 모든 면이 다 재미있었다. 또한 현장에서 의상 입어보고 같이 연기 하면서 선배님들의 많은 도움을 얻어서 잘 마칠 수 있었다.
(이준기) 518에 대해 전혀 몰랐다. 역사 스페셜 같은, 간단히 보이는 영상들로만 접했고 그냥 역사적인 실수 하나로 생각했다. 시나리오를 보면서 너무 영화적으로 크게 만든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믿지 못했고 이렇게 잔혹한 역사가 있었다는게 충격이였다. 학생 진우역을 맡으면서 내가 그 당시의 고등학생이었다면 도망다녔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린 나이에 자유에 투쟁한다는 그런 느낌들을 어떻게 표현할까 걱정이 들었다. 그 당시 있었던 분들의 생각을 많이 해봤고 영상집같은 것을 보면서 좀 더 노력했다. 현장에서 감독님과 선배님들 덕분에 잘 마칠 수 있었다.

Q.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을 영화로 옮기는데 어떤 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셨는지?
(김지훈 감독) 첫번째 희생자나 관계자에게 누가 되지 않겠금 해야한다는 것이다. 또한 작지만 힘이 된다면 화합을하고 용서를 구하고 서로 마음을 열었으면 한다.
(박철민) 그 시대를 비디오나 책이 아닌 예술로써 만나고 가해자가 예술을 통해서 그 광주를 보고 진심으로 참회하고 이 영화를 보면서 피해자를 뜨겁게 안아줬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다.

Q. 영화를 찍기 전, 후 518에 대해서 달라진 생각들이 있다면?
(김상경) 사실 영화를 찍기 전에는 518에 대해서 아는게 없었다. 이 영화를 접하면서 그 사건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시나리오를 보면서 기분 좋았던 건 일반적인 택시기사가 주인공이라는 점이고 그게 옳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희생자들 참배를 드리고 사진도 촬영하러 다니면서 자주 봤다. 영화를 찍으면서 그 때의 사람들의 마음이 정말 억울하고 화나는 심정이었다고 느꼈다. 그 공간(광주)에 있었던 사람들만 거짓말 하는 것 같은데 그런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전에는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5.18 기념식을 TV에서 중계하면 그냥 하나보다 했지 별다른 감정이 없었는데 이제 이 영화를 보고 모두가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요원) 5.18에 대해서 포장되어 있는 것 만을 보았다. 영화를 찍으면서 포장 안의 사연 이야기들을 알 수 있었다. 이 영화가 젊은 친구들한테 518 속에 숨은 내용들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잊혀져 있던 것들이 다시 보여지는게 결코 나쁜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에게 <화려한 휴가>가 우리 역사를 다시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계기로 작용했으면 좋겠다.
(김상경) 시사를 본 20대 친구들이 “영화 속 내용이 진짜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일이예요?” 라고 했다는데 정말 젊은 친구들이 518 안의 모습들을 알았으면 좋겠다.

Q. <화려한 휴가>에 출연한 계기는 무엇?
(안성기) 그 당시에 <바람불어 좋은 날>이라는 영화를 찍고 있었다. 그 사정을 나름대로 많이 듣고, 알고 있었다. 의미는 있지만 영화가 가능할 것인가 생각했는데 시나리오를 보니 너무 좋았다. 소시민이 소용돌이 속에 빠져드는 이야기 구조가 좋았고 마지막에 감동적으로 끝났을 때 영화적인 상업성과 이 주제가 잘 만났다는 생각을 해서 기꺼이 출연을 결정했다.
(김상경) 가장 일반적인 택시기사가 주인공이라는 점이 좋았고 그게 진정한 5.18 의미에 맞는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5.18 사건을 다룬 영화들 중 전체를 다룬 건 없었던 것 같다. 그런면에서 <화려한 휴가>는 좋았다.
(이요원) 시나리오 보고 너무 좋았고 한치의 고민 없이 ‘하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여기 온 배우들 모두 시나리오를 보고 나와 똑같이 생각했기에 이 자리에 모일 수 있었다.
(이준기) 시나리오 자체가 좋았고 부끄럽게 5.18에 대해서 잘 몰랐던 입장이었기에 이런 작품을 하면서 느끼고 싶었다. 뜻 깊은 영화에 같이 참여 한다는 것만으로도 좋고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박철민) 제 의사와 상관없이 김지훈 감독이 나를 너무 좋아한다. 평생 김지훈 감독 영화는 무조건 출연해야 된다고 계약서에 있다고 한다. 그래서 출연했다. 그게 전부다.(웃음)
(김지훈) 사실은 맞는 말이다. 박철민씨 빼고는 다 졸라서 하게 됐다.(웃음)
배우들이 시나리오가 좋아서 출연했다는 점이 개인적으로 부담스럽다

1980년 5월 18일 그 현장에 있었던 외신기자 ‘도날드 커크’ 초청

Q. 오랫동안 기자 생활을 하셨고, 한국에도 20년~30년동안 계시면서 한국을 쭉 지켜보신 분이시기에 우리 역사의 객관적인 증인 역할을 하실 분이라 생각한다. .518 직후에 광주를 방문 했었다는데 그때 경험이 어떠했나?
A. 잠깐 시사를 통해 영화를 봤었는데, 우선 영화에서 보았던 배우들을 봐서 영광이다. 한편으로는 기쁜 자리만은 아닌 것 같다. 5.18은 큰 비극이고 그 비극 때문에 이 영화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통해서 역사의 한 순간을 내다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때 젊은 이들이 많이 사망했었고 5.18이 역사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민주화가 이루어 질 수 있었다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가 갖는 의미가 크다.

Q. 직접 본 광주에 대한 소감?
A. 그 당시 5.18 전후로 데모가 많이 일어나고 있었고 광주는 개인적으로 여러 번 방문했었다. 실제로 5.18 며칠 전에 광주를 방문했었는데 항쟁이 일어나고 시청이 점령 당하는 순간에는 없었고 마무리 된 직후 시청 옆 나무에서 유가족들이 관 뚜껑을 하나하나 열어보면서 혹시 자기 가족이 아닐까 확인하던 장면이 생생한데 그 장면이 영화에서 사실적으로 보여지고 있다. 슬픈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부분이다.
광주는 한국역사의 전환점이라고 생각한다. 전두환 독재 정권의 시작이기는 했지만 그 이후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 결국 광주가 시발점이 되었다 생각한다. 이 영화의 감독과 배우들은 이 시대의 핵심과 본질을 이 영화 속에서 잘 묘사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