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6일 일요일, 씨네큐브 광화문 극장에서는 체코가 낳은 세계적인 거장인 이리 멘젤 감독과 함께 하는 유료 상영회와 씨네토크 시간이 있었다. 이 날 상영된 영화는 <가까이서 본 기차>와 <줄 위의 종달새>로, 영화를 본 관객들이 직접 감독에게 질문지를 작성하여 감독의 의도와 생각을 듣는 이색적인 방법으로 진행되었다.

이 날 유료 상영회는 이리 멘젤 감독을 직접 보고자 하는 관객들로 인해 일찌감치 매진이 되었던 상태. 전주 영화제에서의 상영에 이은 관객들의 호평이 기대감 상승으로 이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관객은 두 영화가 오래전에 만들어진 체코 영화 임에도 불구하고, ‘갓 구워진 빵’과 같은 느낌을 준다고 하여, 두 영화가 시공을 초월하는 걸작임을 증명했다. 또한 희비극의 거장으로 불려지는 이리 멘젤 감독은, 영화 만큼 재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와 재치 있는 입담으로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영화 <가까이서 본 기차>는 5월 10일 씨네큐브 광화문에서 개봉하며, <줄 위의 종달새>는 5월 17일에 같은 곳에서 개봉한다. 이리 멘젤 감독의 또 다른 걸작인 <거지의 오페라>는 5월 24일에 관객과의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


5월 6일 씨네큐브에서 열린 씨네토크 녹취록

Q. 전주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서울에서는 첫 상영입니다. 서울에서 관객들과 만나신 소감이 어떠신지요?
A. 전주에서도 그랬지만 서울에서도 젊은 관객들이 많아서 놀랐습니다. 이렇게 오래된 영화를 이렇게 많은 관객들이 봐준다니 참으로 놀랍고 고맙습니다.

Q. 감독님의 젊은 시절 꿈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A. 젊은 시절 꿈은 신문기자었습니다. 그러나 신문을 보게 되면서 기자의 꿈이 사라졌습니다. 젊었을 때는 참 꿈이 많았는데, 솔직히 지금은 별다른 꿈은 없습니다.

Q. 감독님 영화에서 ‘웃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비극적인 것을 비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넌센스라고 생각합니다. 비극적인 요소를 코믹하게 표현하는 것이 오히려 비극을 전달하는 데는 더 낫습니다. 사람은 웃음 없이는 살 수 없고, 희망도 가질 수 없습니다. 웃음이 없고, 희망이 없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입니다. 체코의 유명한 작가는 웃음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웃음이 지식보다 더 좋다’

Q. 일상에서 그냥 웃는 것과 비극적인 상황에서 웃는 것은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요.
A. 비극이 희극이 될 때 오히려 더 쉽게 웃을 수 있습니다. 아주 슬픈 것도 아주 강렬한 감정도 웃을 때 오히려 진심으로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에서는 종종 사람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해 상황과 인물에 대한 내밀한 정보를 제공하곤 합니다. 사람들의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면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누군가를 이해하고 싶다면 ‘웃음’으로 접근해보십시오. 그의 내면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것입니다.

Q. 감독님이 <가까이서 본 기차>, <줄 위의 종달새>를 만들었던 당시에, 체코는 공산주의 정권의 지배 하에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영화를 만들고 상영하는데 어려움이 있진 않았나요?
A. <가까이서 본 기차>는 저의 데뷔작입니다. 보후밀 흐라발의 원작이 좋아서 그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다는 게 무척 즐거웠습니다. 당시 영화를 만들고 상영하는 데에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이 영화는 많은 나라에서 상영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줄 위의 종달새>는 영화를 만든 직후 공산주의가 강화되면서 영화를 상영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이 영화는 20년 뒤에야 상영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Q. 영화를 보면 다양한 상징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미리 염두에 두고 찍으시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A. 영화를 찍을 때 상징적인 해석을 염두에 두고 찍지는 않습니다. 관객들도 일부러 상징을 찾고,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는, 영화를 보면서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을 소중히 하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것 역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비둘기를 보고 그냥 비둘기라고 생각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피카소의 작품을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각자 해석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저는 관객들이 감독의 의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영화를 봐주시기를 바랍니다.

Q. <가까이서 본 기차>를 보면 기차 폭파 씬이 나오는데요. 당시 기술로 어떻게 폭파씬을 찍으실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A. 기차는 아주 비싸기 때문에 폭파할 수는 없었습니다. (웃음) 기술스텝들이 검은 연기를 만들어내느라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실제로 화면에서 기차가 폭발하는 장면이 나오진 않습니다. 대신 검은 연기가 나와 기차의 폭발, 주인공의 죽음을 표현합니다.

Q. 영화를 만드실 때 감독님의 태도나 각오는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촬영현장은 매일매일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감독이 해야할 일도 많고, 컨트롤해야 하는 것도 많습니다. 제게 영화를 가르쳐주신 선생님은 영화감독은 스텝들 없이는 영화를 찍을 수 없는 존재임을 자각해야 하지만, 동시에 감독이 스텝들 없이는 한 컷도 찍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스텝들에게 들키면 안된다고 말씀하시곤 하셨습니다. 결국 감독은 혼자 판단을 내려야만 합니다. 그래서 영화촬영 중에는 이 영화를 어떻게 끝내야 할지,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그때 저는 최대한 원작들의 의미를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Q. 마지막으로 한국 관객들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A. 여러분이 태어나기도 전에 만들어진 영화를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매우 친절하고 상냥했습니다. 한국에 대한 좋은 기억들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셔서 감사합니다.